현각
"선승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회에서) 프랑스에서 온 패널 한 분이 대단한 말씀을 하셨다.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다. 우리는 종교를 버려야 한다.
평화 대신 전쟁, 갈등과 환경만 파괴하는 종교는 이제 버려야 한다.
2010년이 되었는데 인간이 여전히 종교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하지만 스님 또한 불교에 몸담고 계시지 않나.
"이건 껍질일 뿐이다. 석가모니는 불자가 아니었다. 예수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종교를 만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개신교의 가르침은 많은 부분 예수 이후에 생긴 것들이다.
종교가 종교다워지려면 보편적 윤리,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말은, 예수나 부처에 대한 신격화 혹은 숭배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형태일 뿐이다. 종교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생활에서 실천해 나갈 때 참종교가 된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씀은 '나의 말을 믿지 마라, 내가 말했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였다.
맹목적인 믿음은 종교의 독이다."
― 왜 한국을 떠나셨나.
"아까 보지 않았나. 법당에서 기도하시던 분들이 연예인이 온 줄 알고 달려 나오더라. 내 죄다.
애초에 내가 무슨 계획을 세워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수행자로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매스컴을 통해 갑자기 유명해지니 법회, 특강, 주례,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회의가 들었다."
―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이 폭풍인기에 한몫 했다.
"그래서 창피했다. 수행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겉모습은 사람들에게 유혹만 주었다.
일본에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사랑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칼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했다.
내가 그 비구니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라. 비슷한 심정이었다는 얘기다."
―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말썽꾸러기! 오늘날까지도. 난 반듯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 공부는 잘하지 않았나.
"음…. 누가 그림을 잘 그리듯이 난 공부를 잘했을 뿐이다. 어렵지 않았다.
내겐 '재미'와 '도전'이 중요했다. 착한 아이들은 어른들 말씀대로 살지만, 난 넘어지고 다치면서 배우는 걸 좋아했다.
남들 기대에 따라 사는 것, 예측 가능한 결과는 얼마나 재미없고 무료한가."
― 즐거워 보이신다. 에너지 넘치고.
"보이는 대로다. 선불교는 재즈다. 선승의 생활은 재즈와 같다.
많은 종교들이 형식과 틀, 어떤 룰을 강조하는데 선불교는 다르다.
재즈처럼 자유롭고 즉흥적인 연주를 할 수 있다. 나는 선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 불교가 재즈라니?
"히피로서도, 예술가로도 자유롭게 살 수는 있다. 불교의 자유는 다르다.
'작은 나'를 벗어나 남을 위해 자유하는 것이 불교다.
미국에서 자유, 자유를 외치지만 기분 나쁘면 총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탕' 쏠 수 있는 자유들이 난무한다. 여기 포크가 있다.
이 포크는 나의 생각 방향에 따라 음식을 집어먹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무기도 된다.
불교가 말하는 자유는 에고(ego)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남을 위한 자유다."
제일 좋아하는 불경은 '순간경'
― 불교TV 법회 때 보니, 법문이 끝난 뒤 많은 신도들이 스님과 친견하려고 줄을 섰더라. 한국에 오면 그 인기를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유명해지는 것은 나의 계획도, 야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폭풍처럼 찾아왔다.
나는 그 유명세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명성은 또 다른 짐이자 고통이란 걸 알았다.
외로워지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 내가 거기에서 또다시 유명해진다면 나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선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경허 스님도 자신이 유명해지자 자취를 감추었다.
몇년 뒤 그는 작은 시골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평상복에 긴 머리, 긴 수염을 하고서. 나도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
― 가끔 수행하기 싫을 때 있지 않나? 세상에 재미난 일이 많은데.
"진짜 그런가? 세속의 재미는 나타났다 사라진다. 권태에 빠져들기 쉽다. 수행자가 되기 전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좇는 삶이었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사람들은 달콤한 속세의 것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었느냐 묻지만 그건 꿀이 아니라 독이었다.
승려의 길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운이 좋았다."
―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기억하는 불자들이 많더라. 제일 좋아하시는 경은 무엇인가.
"순간경! 이 커피향을 맡는 순간, 재즈를 듣는 순간, 걷고 이야기하고 시장에 가는 모든 순간,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나누는 순간, 순간, 순간….
― 숭산 스님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산은 항상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왔다 가는 길이 아니요, 있었다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일 뿐."
폴 뮌젠이 본명인 현각은 미국 뉴저지의 보수적인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9남매 중 일곱째였던 현각은 예일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등 독일 철학에 심취했고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를 처음 접했다.
하버드 재학시절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스님 물음에 할 말을 잃자, '하버드 학생이 당신 자신을 모른단 말인가?' 하며 껄껄 웃으시더라.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코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