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보수라면 복지국가 만들고 사회통합해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들 앞에 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세계 최초 복지국가를 만든 이가 독일 보수정치인 비스마르크였다"며 "듣기 거북하겠지만, 사회복지를 통해 사회통합을 하는 게 현 시스템을 지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장 교수는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신자유주의가 한계를 드러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그는 작은 정부론·규제완화·금융시장 개방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강연은 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회에서 마련한 자리로, 같은 시각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었지만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김성조 여의도연구소장 등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최악 지나갔다고? 경제 위기는 끝이 없다"
장하준 교수는 "경제 지표가 회복되는 듯하니까 최악은 지나갔다고 얘기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이는 30년간 세상을 지배해 온 영미식 금융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위기는 3막짜리 연극이다. 금융경색이 온 1막은 지나갔고, 이제 회사가 부도나고 실업자가 양산되는 등 실물경제가 타격 받는 2막이 들어섰다. 실업자는 소비 줄이고, 신용카드 빚을 못 갚는다. 기업들은 장사 안 돼 망한다. 다시 금융경색 온다. 결국 경제위기는 끝이 없다."
그는 "자본시장이 자유화되면서 주주들의 힘이 세져, 기업들은 단기성과주의로 흐르게 됐다"며 "장기투자를 안 하고, 될 수 있으면 고용을 안 한다, 지난 30년간 경제가 잘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특히, 장 교수는 파생금융상품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파생상품으로 노벨상을 탄 마이런 숄즈는 두 번이나 망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낸 탓"이라며 "의약품처럼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금융상품만 팔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MB 경제정책에도 쓴소리... "신자유주의 숨 고르기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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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의 쓴소리는 한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옮겨갔다. 그는 "1990년대 초 신자유주의가 발현하면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며 "이후 기업이 생산적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주식시장이 자유화되면서, (투자자들이) 부채 경영을 죄악시하고 단기 이익을 추구하면서, 기업들은 배당을 높여야 했다"면서 "2001~2006년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기업에 돈을 공급한 것보다 빼간 돈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외환보유고 2천억달러는 하루 국제외환거래량 2조달러의 10%밖에 안 된다"며 "기축통화 없는 우리나라가 외환시장을 개방한 후, 10년 고생해 외환보유고 쌓아놓고도 외환위기 터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제대로 못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정부론·규제 완화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관련, 장 교수는 "우리나라 복지예산은 남미의 여러 나라보다 작다, 큰 정부가 아니다"라며 "또한 현재 규제가 많아서 투자가 안 되고 성장을 못하는 게 아니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는 규제가 많았지만, 투자가 많았고 성장률이 높았다"고 전했다.
또한 금융시장 개방 등 금융정책과 관련, "제조업이 강한 곳에서 금융업도 발전했다, 50년 피땀 흘린 제조업을 버리고 금융업이 발달한 나라를 좇아가는 건 힘들다"며 "제조업 투자 개발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자유화를 지지하는 입장이라도 숨 고르기 해야 한다. 세계적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통합이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복지국가가 안 되면, 국민들은 소극적으로 바뀐다. 복지국가가 되면 진취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세계시장 개척에 나선다. 진짜 보수라면 복지국가 만들고 사회통합해야 한다."
엇갈린 반응... "신자유주의 되돌아볼 때" - "먹고살기 위해선 규제개혁"
신자유주의·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을 향한 장 교수의 쓴소리에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정두언 의원은 "YS정권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세계적인 대세이고 만고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며 "세계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를 되돌아볼 때"라고 말했다.
반면, 친이계인 김용태 한나라당 의원은 "대한민국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규제개혁 하나밖에 없다"며 "복지 확대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자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벤처 기업가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학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떻게 하면 잘될 수 있을까 얘기하는 것"이라며 "지금 세계적인 변혁기가 왔다, 유럽식 복지의 프랑스가 미국보다 노동생산성이 높은 것에 대해 배울 점이 없는지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