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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산

들녁나그네 2022. 6. 29. 10:19

비녀산 - 김지하

 

무성하는 삼밭도 이제

기름진 벌판도 없네 비녀산 밤봉우리

웨쳐부르는 노래는 통곡이었네 떠나갔네

 

시퍼런 하늘을 찢고

치솟아 오르는 맨드라미

터질듯 터질 듯

거역의 몸짓으로 떨리는 땅

 

어느 곳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옛 이야기속에서는 뜨겁고 힘차고

가득하던 꿈을 그리다

죽도록 황토에만 그리다

 

삶은 일하고 굶주리고 병들어 죽는 것.

삶은 탁한 강물속에 빛나는

푸른 하늘처럼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것

 

송진타는 여름 머나 먼 철길을 따라

그리고 삶은 떠나가는 것.

 

아아 누군가 그 밤에 호롱불을 밝히고

참혹한 옛 싸움에 몸바친 아버지

빛바랜 사진앞에 숨죽여 울다

박차고 일어섰다

 

입을 다물고

마지막 우럴은 비녀산 밤봉우리

부르는 노래는 통곡이었네 떠나갔네

 

무거운 연자매 돌아 해가고

기인 그림자들 밤으로 밤으로 무덤을 파는 곳

피비린내 목줄기마다 되살아오고

 

터질듯한 노여움이 되살아오고

낡은 삽날에 찢긴 밤바람 웨쳐대는 곳

 

여기

삶은 그러나

낯선 사람들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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