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백낙청교수 인터뷰

들녁나그네 2008. 5. 16. 09:58

 

이명박 정부 지지율 추락은 ‘신뢰성의 문제’

실망만 해선 또다른 ‘준비안된 집단’ 낳게돼

 

권=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백=우리 시대라고 말하면 거창해서 말하기 겁이 나지만, 이렇게 얘기해 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아주 큰 차원에서 말한다면 지금은 지구환경 자체가 위기에 빠져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점입니다. 세계체제 차원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합작해서 관리하던 질서가 무너진 후 미국이 독주하면서 세계가 큰 혼란에 빠져 있는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혼란의 희생자가 안 되고 살아남으면서도 혼란에 빠진 세계를 더 나은 인류문명의 시대로 가도록 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가 우리 시대의 과제입니다.

 

동아시아 차원에서는, 중국이 급격히 성장하며 강력해지고 있다는 게 제일 큰 변수입니다. 전반적으로 동아시아는 형편이 나은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 비교적 유리한 입지에 있는 동아시아가 이를 활용해서 세계 전체가 한층 정의롭고 생명친화적인 시대로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한반도로 오면, 그동안 한반도 전체의 민중의 삶을 옥죄고 있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무너지는 단계에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한반도 전체가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길을 고민해야 합니다.

 

더 차원을 낮춰 남한 사회로 오면, 이런 여러 차원의 흐름 속에서 우리 남쪽 시민들의 힘을 어떻게 결집시켜 대응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습니다. 분단체제의 변혁이라는 목표에 맞춰서 이런 과제 해결에 적합하지 않은 극단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으는 게 이 시대 진보개혁세력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권=말씀하신 과제를 이행하려면 결국 현실정치의 힘이 중요합니다. 우선 이명박 정부에 대해 얘기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두달 반밖에 안 된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28%로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 아닙니까?

“분단체제 변혁 맞춰 진보개혁 머리 맞대야”

 

백=지금 이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할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그토록 떨어졌다는 것은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떨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지도자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선 때 국민 다수가 도덕성 문제가 있어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했는데, 위정자의 도덕성이라는 게 결코 개인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곧바로 업무능력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권=쇠고기 파동뿐만 아니라 현 정권이 그동안 한 일을 보면서, 우리가 이미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느낌이 드는데 현 정권은 선진화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현재의 방향이 선진화의 길이라 볼 수 있을까요?

백=물론 아닙니다. 대전제가 우선 틀린 게, 지난 10년 동안 후진하고 있었다는 전제를 깔고 거꾸로 가면 선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입니다.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단정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선진화라는 게, 그 사회의 여러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서 척결해 나가는 것인데, 박정희 시대식 성장을 회복하겠다고 하고,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킨다며 외국 기업들의 요구나 들어주는 게 선진화라고 멋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으론 서민들은 더 못살게 되고 우리 사회의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요소는 오히려 더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권= 이명박 정부는 6·15 공동선언은 언급조차 않고 쓸데없는 발언으로 북한을 자극해 아직 북한과 말문도 못 열고 있습니다.

백=남북관계가 냉각기에 들어선 것은 틀림없고, 그렇게 된 데는 이명박 정부가 6·15 공동선언이나 10·4 노선을 격하시키고 비핵화 연계 전략을 내세운 게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을 뒤집는 일은 이제까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어느 시점에서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따르겠다는 명백한 입장표명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최근 몇 주 사이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 더 변할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첫째는 북-미 관계의 진전입니다. 또 이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인 경제 살리기가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 안 되게 돼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북-미 관계 개선을 계기로 ‘통미봉남’을 해 보겠단 생각을 품을 수는 있지만, 옛날 식의 통미봉남은 불가능합니다. 북은 북대로 남쪽을 따돌려서 득 될 게 없습니다.

 

마케팅식 중도-극단적 보수노선 허상 확인

국민통합 위해선 ‘변혁적 중도주의’가 해법

 

백=변혁적 중도주의는, 분단체제를 변혁해서 진정한 의미의 선진사회를 한반도 전역에 걸쳐서 건설하자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 일에 필요한 국민통합을 가능케 해줄 중도노선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에 정권을 잡기 위해 중간 표를 잡아야 한다는 뜻의 중도주의와는 발상부터 다르죠. ‘원만한’이란 말에는 자본주의를 인정한다는 뜻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무조건 인정하고 그 룰을 따라가자고 해서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될 수 없고 진보개혁세력의 결집도 불가능합니다.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곤란한 체제이지만, 우선은 자본주의 세상이니까 일단 그걸 현실로 인정하고 살아남아서 극복하자는 것이고, 한반도에서 남북이 협력하고 교류하려면 그럴 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자본주의를 부정해서는 그런 동력마저 생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혁적 중도주의는 한마디로 상식의 문제입니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닌 것들이 뭔지를 하나씩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가령 남한 사회에서 계급혁명, 민중혁명을 일으켜 남쪽을 먼저 변혁시킨 후 통일할 수 있다는 것은 공허한 담론입니다. 북의 민족자주 노선을 수용해 반미자주운동을 펼쳐서 통일하면 된다는 것도 상식에 어긋나기는 마찬가지죠. 중도 마케팅식의 중도주의와 더 극단적인 보수 노선, 북은 내버려두고 그냥 남쪽에서 이명박 정부 생각대로 ‘747’을 성취하면 된다는 것도 헛된 논의라는 게 벌써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지선다, 오지선다 시험답안처럼 써놓고 말 안 되는 걸 지워 가다 보면 변혁적 중도주의밖에는 남는 게 없습니다.

 

백=대선 직후만 하더라도 보수정권 10년이 시작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너무들 많이 하니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국민들이 염증을 느껴서 다음번에도 또 하나의 준비 안 된 집단으로 넘어갈 우려가 있다고 얘기했는데, 그 논지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다만 준비 안 된 집단으로 그때는 민주개혁세력을 염두에 뒀지만, 박근혜 지지 세력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내공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친박연대를 포함해 그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나 정책노선을 볼 때 그걸 준비된 집단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갔습니다. 그렇다고 박근혜 세력과 여전히 준비 안 된 민주개혁세력, 이런 선택밖에 못 갖게 될 것이라고 지금부터 예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민들의 기운이 모이는 게 중요합니다. 기운이 모이면 그 기운을 받는 사람이 나오고 조직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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