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에
어느 날 찬비가 내리는 초가을 쯤인가,
비가 세차게 내리고 온통 비를 맞으며 추위에 웅크리고 찬비 속을 뛰어 가다가
고모부를 마추쳤다 비 맞은 생쥐 꼴인 나를 데리고 가서 고모부는 내게 종이우산을 사주셨다. 그 당시 콩기름을 종이에 먹인 종이 우산은 아무나 가지고 다니는 우산이 아니다.
아주 부자가 아니면 꿈도 꿀 수없는 우산이다.
그 우산을 바쳐들고 빗속을 오면서 나는 서럽게 울었었다.
그 고마운 기억은 아직 내 가슴에 문신이 되어 새겨져 있는 고마운 기억이다.
“비”를 말할 때 사람들은 헷세의 안개비를 생각하거나 영화 “남과여” 의 한 장면을
생각하거나 늦가을 낙엽위로 촉촉하게 내리는 비를 생각하거나 직접 자기가 경험했던
비 오는 날의 애틋한 사연을 추억할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비련의 이별 장면이나
애절한 죽음을 통한 이별의 장면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면 어두워지고 축축해져서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이 내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인 것같다. 그런데 나한테는 그런 생각보다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고 거대한
물줄기가 강을 쓸고 격정적으로 파도치는 바다가 생각난다.
비가 세차게 내릴 때면 어릴 적 온 동내가 물에 잠기고 강이 범람하여 상류로부터
돼지며, 소가 떠내려 오고 전신주가 떠내려 오고 집이 무너져 떠내려 오고,
그래서 용감한 동내 사람들이 그것들을 건지러 작은 배를 타고 거센 물과 싸우며
사투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새난도"의 한 장면처럼, 서부개척시절의 개척자들 처럼
자연과의 투쟁을 보았다,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연에 대한 위대한 투쟁으로 기억되는 모습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면 거대하게 넘치고 성난 듯이 물이 흘러가는 한강을 찾아가곤 한다.
그 역동하는 물을 보며 자연에 도전하는 개척자를 보고 싶어서 일까? 아니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모든 것을 삼키고 휩쓸어리고 파괴 해버리는 폭우의
공포가 남아있어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