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진보가 승리 하려면

들녁나그네 2009. 1. 7. 10:24

본질은 뭘까?

본질은 경쟁력이다.

지금 무엇을 경쟁하고 있는가?

지역주의의 본질은 독재자 박정희의 지역 편중개발이다. 정치의 힘은 결국 돈이다. 돈을 한쪽에만 몰아준 게 지역주의 본질이다. 어쨌든 김대중과 노무현은 지역주의라는 본질을 정면으로 건드려서 정권을 얻었다. 정치권을 떠나 더 큰 스케일로 보면 생산력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진보가 노상 혁명을 말하지만,

본질로 보면 '혁명의 시대'라 불리는 20세기에 진보가 한 일은 교육의 보급이었다.

교육이 가장 절실했던 중국과 러시아에서 가장 큰 변혁이 일어났다.

 

교육이 진보의 경쟁력이다.

진보는 교육을 '생산'한 것이며 자본가가 공장에서 생산한 신발보다, 진보가 학교에서 생산한 지식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 역사의 균형추가 진보 쪽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계급이동이다. 신분상승이다. 사회가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로 갈렸던 계급시대에 교육은 가장 큰 생산성이었다. 그러나 교육이 충분히 보급된 지금에 와서 교육은 더 이상 진보의 전매특허가 될 수 없게 되었다. 교육이 단지 취업기회를 보장하는 라이선스 장사에 불과한 형편으로 전락한 지금 황당하게도 보수가 더 교육문제에 목청을 높이게 되었다.

지금 학교는 지식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전락했고 교장은 공장장이 되었다. 학교를 공장으로 보는 것이 딴나라의 교육이념이다. 이 나라에 진보의 진정한 스승이 없다 보니 교육이 이렇게까지 몰락한 것이다. 이제 새로운 세기다.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교육만으로 부족하고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진보는 무엇보다 도덕적 우위, 지적인 우위, 생산력의 우위라는 세 가지 지점에서 저들보다 우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노무현 시대에 진보는 세 가지 지점에서 확실히 우위에 서 있었다. 인터넷 선점이 컸다. 인터넷의 생산성이 진보의 생산성이었고 인터넷의 희망이 진보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거품이 꺼진 지금 우리는 세 지점에서 저들보다 우위에 서 있지 않다.

서구라면 모든 면에서 첨단에 이르러 있으므로 생산현장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진보의 편이다.

 왜인가? 머리 나쁜 사람은 생산력 경쟁에서 당연히 뒤지게 되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경쟁하면 당연히 머리 좋은 진보가 이기게 되어 있다. 그러나 후진국은 다르다. 생산성이 학문에서 나오지 않는다. 후진국에서는 생산력이 독재자의 지령, 관료의 밀실에서 나온다. 연고와 정실, 부패와 뇌물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후진국의 진보는 생산력에서 우위에 설 수 없다. 
작금의 경제난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경제가 보수의 독점 영역일 이유는 없다는 거다. 

2002년에 우리가 이길 수 있었던 원인은? 당시 인터넷은 처음 생겨난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인터넷 분야에서는 세계와 같은 출발선상에 나란히 섰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었다. 공정하게 경쟁하면 머리 좋은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진보가 일정부분 선점할 수 있었다. 

 생산성 면에서 우리가 앞설 수 있다. 우리가 더 똑똑하기 때문이다. 창의를 통하여 지식이 생산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대담한 구상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