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손호철-장정

들녁나그네 2008. 6. 9. 13:22
1934년 10월 16일 저녁. 마오쩌둥(毛澤東)과 농민들로 구성된 8만5,000명 홍군은 횃불을 들고 중국 남부 장시(江西)성의 작은 도시인 위두(于都)를 떠나 긴 도피 여정에 들어갔다.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군을 피해 역사적인 1만km의 장정을 떠난 것이다.

이로부터 15년이 지난 1949년 10월 1일.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개국을 선언했다. 반면에 장제스는 살아남은 60만의 병력을 싣고 대만으로 도주해야했다. 이로부터 다시 59년, 따라서 장정으로부터 74년이 흐른 2008년 현재. 중국은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의 3대 경제대국으로 웅비하고있다. 그리고 이같은 웅비의 상징으로 유치한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물론 티베트사태와 쓰촨·四川지진으로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지만).

그리고 앞으로 26년 후이자 장정 100주년이 되는 2034년에는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두 번째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앞으로 41년 후이자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론 조만간 중국이 위기에 부딪칠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기는 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체제의 존재 그 자체로부터 현재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장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정은 현대중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다. 중국이 시장경제체제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으면서도 왜 자신들의 체제를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 라며 사회주의라는 말을 고수하는지, 또 왜 공산당이라는 사실상의 일당체제를 계속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장정은 그 자체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 드라마이다. 적에 쫓기고 해발 5,000m의 설산과 죽음의 늪지대등자연과 싸우며 중국의 오지를 헤매면서도 치열한 내부 투쟁을 해야 했던 장정의 이야기는 '현대판 삼국지'이자 한 연구자가 잘 지적했듯이 셰익스피어조차도 결코 쓸 수 없는 극적인 드라마이다.

중국공산당의 홍군은 황토고원의 산시(陜西)성에 도착해 국민당군 추격대를 몰살시킨 1935년 10월 18일까지 368일동안 24개의 산을 넘었고 해발 4,000m 이상의 만년설산 5개를 포함해 18개의 산을 넘었다. 또 장시성에서 출발해 산시에 도착할 때까지 중국 전체 27개 성의 절반에 가까운 12개성을 거쳐 62개 도시를 점령했다. 마오가 장정이 중국 전역에 공산주의를 선전하고 그씨를 뿌린 파종기라고 이야기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홍군은 장정기간 중 18일간의 야간 행군, 235일간의 주간 행군을 함으로써 총 253일간 행군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115일은 전투를 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이중 56일은 홍군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놓고 마오가 이끄는 중앙군(제1방면군)과 장궈타오(張國燾)가 이끄는 제4방면군이 격론을 벌여 발이 묶인 채 쓰촨 북서부 지방에서 원치 않은 휴식을 해야 했었다. 이를 빼고 나면 사실상 행군을 하지 않은 '휴식일'은 59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 중에서 15일은 하루 종일 전투를 했다. 결국 하루 평균 40km를 걸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밖에 하루 종일 전투를 한 15일 이외에도 매일 평균 1건의 작은 전투를 벌였다. 이 같은 초인적 강행군으로 결국 출발 당시 8만5,000명에 달하던 홍군은 도착 때에는 8,000명(4,000명이라는 설도 있다)으로 줄었다. 특히 원래 출발했던 사람은 3,000명에 불과했다. 서른 명에 한명만이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특집은 한국인으로는, 아니 비중국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직접 장정을 돌아보고 쓴 장정 기행기이다. 물론 홍군처럼 1년을 들여 걷지는 못했고 대신 차를 타고 돌았다. 구체적으로, 6개월간의 중국 현지 어학연수 및 자료조사를 포함해 1년 반 동안 준비를 했고 2008년 3월 10일부터 4월 28일까지 49일간 자동차로 하루 평균 11시간씩 1만3,500km를, 항공기 이동거리를 포함할 경우 1만8,000km를 장정의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직접 보고, 취재한 기록이다. 특히 거리로 보자면 1만3,500㎞의 60% 이상인 8,000㎞를, 시간으로 보자면 총 500여 시간의 70% 이상인 350여 시간을 한국인들이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오지 등의 비포장도로를 헤치고 가야 했다. 그 과정은 파란만장했고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였다.

워낙 오지라 길이 나쁜데다가 올림픽 등으로 길을 수리한다고 다 뜯어 놓아 길이 길이 아니었다. 가는 길이 도중에 차가 다니지를 못하는 길이라 다시 돌아가 동서남북으로 시도를 했다가 '4수'만에 성공한 적도 있다. 30km를 6시간 반 만에야 통과할 수 있었던 공포의 비포장도로도 있었다. 자오핑두(皎平渡)라는 곳을 가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길'이라는, 먼지가 20cm씩 쌓인 험난한 산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넘어야 했다.

게다가 갑자기 터진 티베트사태로 두 차례나 추방을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쓰촨 서북의 장족(티베트족) 지역인 루딩(定)교 취재 중 위험지역이라는 이유로 공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추방을 당했다. 며칠 뒤 다른 장족 지역을 가기 위해 4,532m의 고지를 넘어 10시간 만에 도착한 도시 입구에서 저지당해 다시 빙판길의 그 고지를 넘어 돌아와야 했다.

그 결과 일정도 계획보다 보름정도 줄이고 쓰촨 서북부의 930km 구간을 건너뛰어야 했다. 원래 장정이 1만km였으니 약 10분의 1구간을 다녀오지 못한 것이다. 그러 나 그 바람에 목숨을 구했는지 모른다. 출입저지를 당한 지역이 바로 최근 쓰촨 지진이 일어난 지역으로 출입저지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취재를 하다가 지진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장정은 1)국민당군과의 투쟁이자 2)자연과의 투쟁이었으며 3)내부노선 투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21세기 장정'은 좀 다른 투쟁이었다. 1) 길과의 투쟁, 2)길 때문에 못 간다는 운전기사와의 투쟁, 3) 나쁜 길로 인한 시간과의 투쟁, 4) 출입금지 등 규제와의 투쟁, 5) 마지막으로 나 자신(의 인내력)과의 투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