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녁나그네 2008. 4. 10. 09:36

 

우리 사회가 유럽에서 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인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덜 성숙되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잘 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에게 민주주의의 핵심을 이해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자세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보았을 때 가진 자가 불우한 이웃들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민주주의적인 태도인 것이며, 자신의 재산이니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발상이야말로 가장 반민주적이며 또한 파쇼적인 것이다.

바로 그런 면에서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1위의 부자가 된 워렌 버핏의 명언이 아이로니컬하게도 사회주의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해 미국에서 ‘행운의 티켓’을 거머쥔 특권층은 그만한 행운을 못 가진 이들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 부자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불공정한 미국의 세제를 뜯어 고쳐야 한다.”(워렌 버핏)


그 때문에 참여정부의 경제개혁에 대한 실패를 묻지 않을 수가 없으며, 이에 대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총체적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노 대통령은 비교적 진보적인 경제관을 갖고 있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정책 수석으로 임명하고 그의 경제 개혁안을 국가 경제의 모델로 채택하려고 했다. 노 대통령의 초심이 어디에 있었는지가 분명히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관료 집단 출신들로 둘러싸인 노 대통령은 그들의 수 십년 간 쌓아 온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유 시장주의 경제 예찬론에 설득을 당하게 되었고, 이정우 정책 수석은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 지지 않자 결국 사표를 제출하고 말았다. 한미 FTA를 끝까지 반대하고 있는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수석 비서관의 경우도 이와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노 전 대통령이 국가 경제를 어떻게 운용해야겠다는 자신만의 청사진을 갖고 있었더라면 그는 주위의 온갖 현혹에도 불구하고 그의 길을 갔을 것이며, 그랬다면 대한민국의 현재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고, 대선과 총선의 결과도 다를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은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 할 타산지석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서 어떠한 정치를 할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고 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참여정부는 애초의 경제 정책 목표를 초과달성한 경제적으로 성공한 정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칭찬해 주기는커녕 원망을 한다고 국민들을 나무라는 참여 정부에 관여했던 인사가 있다면, 더 이상 설명해 줄 말이 없다. 그에게 “도대체 당신의 국민은 누구냐?”고 묻고 싶을 따름이다.


일단 참여정부를 끝으로 하여 우리 좌파정권의 실험은 끝났다. 참여정부가 비록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한 실패한 정권이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지만, 지난 10년 동안의 좌파정권(무늬만 좌파정권이지만)의 역사적인 공적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정경 유착, 권경 유착, 권언 유착을 통한 부패 고리의 상당 부분이 풀렸다. 정치판이 맑아진 가운데 어느 당이 더 깨끗한 인사를 공천하느냐를 두고 경쟁이 붙어서 민주당에서는 11명의 애꿎은 유력 당선 후보들이 읍참마속의 대상이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과거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역사 속에서 그 치욕스런 행적을 감출 뻔 했던 친일 인사들의 과거가 하나씩 하나씩 밝혀졌다. 군사 독재 치하에서 빨갱이란 누명을 썼던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그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복지와 인권의 개념조차 없었던 대한민국에 복지와 인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되었다. 국가가 명하면 그저 받들어야 한다는 봉건적인 정치 풍토가 사라져 가고 있으며, 여러 매체, 특히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실제 정치에 반영하고자 하는 참여정치가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언론의 자유도 만개하여, 언론을 두려워 한 나머지 정부의 각종 정책에 반대하는 기자들을 남산의 대공 분실로 데려가 고문을 하는 대신, 기자실에 대못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같으면 국회의 별관에서 문을 잠근 채 통과시켰을 각종 개혁 입법안을 최소한의 민주 절차를 밟아 통과시키려 하다 한나라당의 비민주적인 반대행위로 인해 수많은 좌절을 겪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이상은 높았으나 그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에는 실체적인 청사진이 없었고, 이를 새로 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구하는 노력도 게을리 했다. 거기에 참여정부의 실패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인사가 만사란 말이 있다. 세상만사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이 그 조직에 모여 있는가에 따라 그 조직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참여정부의 실패는 이명박 정부에게도 좋은 연구 자료 및 참고자료가 될 것이나, 이명박 정부의 구성원 면면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차피 역사는 정반합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좌파정권이 정치적인 개혁에 올인한 나머지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을 읽지 못해 보수 우파 정권이 탄생하게 되었다. 정치의 목적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에 있다. 대다수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하지 못한 참여정부는 그런 의미에서 정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행착오는 그 자체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좌파들에게 향후 그들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민심은 천심이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정권은 망하기 마련이다. 


이제 5년이 지나면 이명박 정부와 거대 여당이 된 한나라당도 참여정부와 마찬가지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현명하다면 국민을 받드는 정치를 할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 생각에 “참, 정치를 잘 했다!”는 평을 받게 된다면 10년이고 20년이고 정권을 계속 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오늘의 승리에 안주하고 국민을 우습게 안다면 국민들은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정권 교체가 된 이제서야 비로소 대한민국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국민 주인으로 섬기기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좌파 세력들이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국민 섬기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집권의 기회는 반드시 찾아 올 것이다!